머리말

당너머 이곳은?
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오빈역(娛賓驛)이 있었고,

권근(權近)의시에
“누(樓)밖에는 긴 강이요 들 밖에는 산인데,
좋은 바람이 두 기둥사이에 차 있도다.
올라가면 야 비록 살과 뼈를 밝히기는 하나,
땀 흘리는 농부들을 차마 볼 수 있는가” 하였다.

권람(權擥)의 시에
“비를 무릅쓰고 새벽도 아랑 곳 없이 역루(驛樓)에 올라,
서쪽으로 화산(華山)을 바라보니 한없이 유유하도다.
누가 이날의 어버이 생각하는 뜻을 알리,
돌아가려는 마음을 쥐어서 물 흐름에 부치고자 하노라.” 하였다.

오빈 역 건설당시 오빈리 유적조사보고서(중원문화재연구원)에 의하면 마을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유구가 확인되고 거기서 건물터와 관련된 초석 및 적심석, 석렬 및 석축시설이 조사 되었다. 건물터와 관련된 출토유물로 추정해 볼 때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건물이 조성되었다고 한다.

1989년 조금 떨어진 본가에서 이곳으로 농장 및 거처를 옮겼고, 당시 이곳은 집 한 채 없었고 작은 골짜기로 마을 뒤 당집 옆 고개를 넘어야 이곳에 다다랐고, 내 할아버지 아버지 또 지금 내가 농사를 짓고 내 자식들이 살아갈 아늑한 보금자리이다.

내 부모님은 이곳에 밭 한 떼기 하늘바래기 논 다섯 다랑이를 나에게 주셨다. 이 골짜기는 도랑에 가재가 돌 수만큼 많았고 여뀌만 걷어 치워도 둥투라지가 우글거렸다. 나는 어렸을 적 이곳에서 동무들과 가재천렵을 수없이 했다.

지금은 이곳에 한우농장, 한우고기식당, 판매장, 야외 바베큐장, 연회장, 도예실, 만화스튜디오 등이 조화를 이루었다.